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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28 몰트만이 말하는 이성의 부정성
  2. 2009/04/24 몰트만의 희망의 해석학
  3. 2007/11/03 희망(Worauf wir hoff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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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르겐 몰트만은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와 트루츠 렌토르프의 책 어디에서도 아우슈비츠 라는 단어를 단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1,2차 대전, 아우슈비츠, 히로시마 등의 참혹한 역사에서 이성의 부정성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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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tmirsein
학교 다닐 때 몰트만 얘기 많이 하고 또 그만큼 많이 들었다. 몰트만이 유명해진 이유.... 그분 책을 우리말로 읽을 수 있어서다. 아님 말고... ^^ 어쨌든 몰트만을 입신양명케 한 [희망의 신학]은 멋진 책이다. 몰트만의 희망이 뭘까? 한 번 정리해 놓아야지 싶어서 써 놓은 것을 오늘 다시 읽는다.

공부하고 싶다. 학위 말고 공부를 하고 싶다. 아니 좀 더 진솔하게는 님도 보고 뽕도 따고 싶다. 더 솔직해진다면, 외로운 내 스승에게서 행정적 및 공식적으루다가 공부하고 싶다. ^^ 스승이 다시 복직되든, 다른 학교에 자리를 잡든 둘 중 하나는 되었으면 싶다.
스승이 해직된 지 벌써 10년이다. 옛날 어느날 김찬국 교수님의 약력을 본 적이 있다. 김찬국 교수님이 아닐 수도 있지만 내 기억에는 그분 맞다. 그분이 학교에서 해직당하고 약 7년 만에 복직되셨던 약력을 봤다. 그때 나는 그분이 7년동안 어떻게 버텼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런데 내 스승은 10년이 찼다. 강산이 변해야 되는데 그래야 외운 고사성어가 참 가치를 발할텐데, 아직 임계점이 안 왔는지 맹탕하다. ^^
언젠가 나는 포옴나게 기도했다. 스승의 복직과 내 신학함을 함께 묶겠노라고. 그래서 그런지 나는 아직도 이 모양 이 꼴이다. ^^
하지만 내 기도를 들으셨고, 듣고 계시고, 앞으로도 들으실 주님은 나와 스승에게 가장 좋은 것을 베푸실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긴다. 난 아직 신앙이 어린지(오렌지 아님...^^)  예수님처럼, 본회퍼처럼 상황이 바뀐 것 없이 그냥 이대로 끝나버리면 어쩌나 싶을 때도 있다.

희망의 해석학이라고 제목을 붙이니 거창해 보인다. 본시 쩍쩍 신앙을 무시하면 안 되듯, 학문할 때는 학학(하악하악....ㅎㅎ) 해야 포옴난다. ^^



1. 약속
몰트만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약속의 말씀이다. 그에 의하면, “약속은 말의 행위”로서 약속하는 사람 자신을 통하여 보증되는 확약이며, 약속하는 사람은 그의 말을 “지키며” 그가 약속한 것을 실행해야만 하는 의무를 자신에게 부과한다. 그런데 몰트만에 따르면, 하나님의 약속은 율법의 형태 속에 있는 약속이다. 그래서 몰트만은 이 약속을 계약의 한 면이라고 말한다. 몰트만은 약속의 법적인 면을 하나님의 선택에서 발견한다.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선택하시고 계약을 맺을 때, 약속과 계명이 주어진다. 그러므로 약속과 계명(율법)은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몰트만은 “복음의 형태 속에 있는 약속이 약속과 결부된 명령으로서의 율법의 근원적인 의미를 다시금 드러내는 것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고 전망한다. 따라서 몰트만은 율법의 본래적 정신은 복음이라는 점을 간과하지 않는다. 그래서 몰트만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약속은 계명이고, 동시에 복음이다.


2. 약속의 미래적 지평으로서의 희망
몰트만은 약속의 종말론적 지평을 궁극적 지평(성취)의 의미에서 찾는다. 왜냐하면 약속은 성취의 미래를 지향하고, 이 성취의 미래는 약속과 함께 말해지기 때문이다. 이에 근거하여 몰트만은 예언자적 종말론을 이스라엘의 약속 신앙의 토양에서 찾는다. 그러므로 몰트만에 의하면, 예언자들에게서의 하나님은 약속의 미래적 지평으로서의 희망의 하나님(Deus spei)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신앙이 이미 약속 안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신앙은 미래적인 분이신 약속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몰트만에 의하면, 희망은 약속의 종말론화이다. 그런데 몰트만에 의하면, “약속의 종말론화”는 한 개인에게, 혹은 이스라엘 민족에게서만 끝나지 않고, 야웨의 심판의 날을 통해 모든 민족에게로 확장된다. 이것이 “약속의 우주화”이다.


3. 희망의 해석학
몰트만에 의하면, 적어도 예언자들의 메시지에서 종말과 창조는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성취의 미래로서의 종말은 약속으로서의 창조의 목적이다. 몰트만에 의하면, 약속으로부터 기대되는 희망은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러므로 몰트만의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미래로부터 도래하시는 사건으로 해석된다. 이를 통하여 몰트만은 “희망”을 구체화한다. 그는 역사의 종국으로서의 희망의 미래로부터 역사 내지 현재를 해석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희망의 미래는 현실 세계에 내재해 있는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한다. 따라서 몰트만에 있어서 역사 참여와 변혁을 위한 실천이 바로 희망의 해석학이요 그 실천이다.


몰트만의 종말론과 기독론 책을 비평한 책이 있다. 베르톨트 클라퍼르트가 쓴 Worauf wir hoffen(우린 뭘 희망하나) 이란 책인데, 요것 참 좋은 책이다. 아직 정식 번역이 안 되었으나, 오류투성이 번역은 내 손에 있다. ^^
2007/11/03 - [책!책!책!] - 희망(Worauf wir hoff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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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tmirs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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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잠시 독일에 있을 때 내게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신 분을 기억하면서 이 책을 매일 조금씩 번역했다. 부퍼탈 신학대학에서 교수하는 -지금은 은퇴했는지 모르겠다-  클라퍼르트(Bertold Klappert)는 위르겐 몰트만의 제자이자 동료이다. 이 책은 클라퍼르트 교수가 몰트만의 종말론과 기독론 책을 비평적으로 읽은 기록을 남긴 책이다. 몰트만의 종말론 책은 "오시는 하나님"(Das Kommen Gottes)이고, 기독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길"(Der Weg Jesu Christi)인데, 그는 몰트만의 종말론과 기독론을 자신의 수업시간에 공부하고 또 몰트만과 함께 토론도 한 뒤에 비평책을 내 놓은 것이다. 그는 우선 몰트만의 종말론 책을 이잡듯 읽고 마지막 단락에서 비평을 하는데, 기독론 책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독일에서 공부한 신학교수들 중에 튀빙엔 대학 출신이 많다. 특히 그 학교의 조직신학 교수였던 몰트만의 제자들이 많다. 얼핏 생각하는 사람은 김균진, 김명용, 이신건, 김도훈 교수 등이다. 고 박봉랑 선생님과 고 전경연 선생님이 몰트만을 우리나라에 소개하고, 그 뒤를 이어 김균진 교수가 몰트만의 책을 많이 번역했다. 그래서인지 몰트만이 우리나라에서 유행한 신학자가 되었다. 조직신학 전공의 석사논문 주제를 보면, 몰트만의 인기는 단연 돋보인다. 사실 몰트만 말고도 같은 대학에서 교수했던 에버하르트 융엘도 있고, 뮨헨의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도 있다. 융엘이나 판넨베르크가 우리나라에서 그리 유행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그들의 책이 번역되어 소개되었나 안 되었나가 결정적일 것이다. 어디 이유가 이것 하나 뿐이겠는가. 이유를 한 가지 더 생각해보면 -이건 내 생각일 뿐인데- 몰트만이 이차대전 때 포로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 경험이 그의 신학에 결정적이었다는 것이 우리네 신앙정서에 잘 맞다. 예를 들면 그의 책 제목이 우리 귀에 참 은혜롭다.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몰트만이 출판시장의 묘맥을 딱 집고 있지 않은가.

클라퍼르트가 몰트만의 종말론과 기독론을 비평한 것을 수박겉핥기식으로나마 한 두 줄로 소개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우선 "하나님 나라의 도래"는 종말론의 공리와도 같은 주제인데, 몰트만은 이 주제를 바르트 이후 한스 요아힘 크라우스에 이르기까지 성서적-조직신학적 전통에서 연구해 놓은 것을 언급하지 않고 살며시 비켜간다고 클라퍼르트는 비평한다. 두번 째로 몰트만의 통합적 종말론은 우주적 종말론 안에 모든 것을 다 집어 넣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거기에다 하나님 나라의 도래까지도 다 집어 넣어 해결하려는 점이다. 그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 나라의 도래가 우주적 종말론에 상대해서 통합적으로 작용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클라퍼르트는 몰트만이 "만유 안에 계신 하나님"이란 개념을 이사야 6장 3절로부터 이끌어 오는데, 그것만이 아니라 고린도전서 15장 28절도 있다고 제시한다. 몰트만의 기독론에 대한 그의 비평은 한 마디로 표현된다: 메시아적 패러다임에서 묵시사상적-우주적 패러다임으로 전환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나서 몰트만의 답변이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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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tmirs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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