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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3/10 성경 왜곡의 역사
  2. 2009/03/05 [신약성서 우리에게 오기까지]
2009/03/05 - [책!책!책!] - [신약성서 우리에게 오기까지]
민경식 교수가 쓴 [신약성서 우리에게 오기까지]를 읽는데 자꾸만 바트 어만 이란 사람의 책을 인용하길래 [성경 왜곡의 역사]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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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민 교수가 바트 어만의 책을 번역하면서 원고를 쓸 아이디어를 얻었구나 싶었다.
민 교수가 쓴 책은 한달음에 쓴 게 아니고, 연재했던 원고를 묶은 것이기에, 아마도 바트 어만의 책을 번역하면서 원고에 쓸 자료나 아이디어를 얻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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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5 - [책!책!책!] - [신약성서 우리에게 오기까지]

물론 민 교수가 바트 어만에 비해 실력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 다만 민 교수의 책은 렌즈를 zoom out으로 썼다면, 바트 어만의 책은 민 교수보다는 zoom in 해서 썼다는 것이다. 어쨌든 민 교수 책이나 바트 어만 책은 줌 인이냐 아웃이냐의 작은 차이만 있을 뿐 대중(일명 평신도 대상, 그러나 신학 전공자가 읽어도 유익한)을 위해 쓴 책이다.

바트 어만의 책은 민 교수의 글투보다 더 대중적이다. 바트 어만이 내게 이야기 해주는 듯한 느낌.
바트 어만이 민 교수보다 좀 더 프로 느낌이랄까, 아니면 글쓰기가 탄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민 교수는 약간은 보수적인데 반해 바트 어만은 우리의 신앙 환경상 조금 진보적이다.
그러나 바트 어만이 자기 책 마지막에 성서 사본학 분야에서 해석학의 이론을 들이대며, 나름대로 성경 변개(change, 민 교수는 변개라고 하고, 바트 어만 책 번역할 때도 변개 라는 말을 했는데, 책 제목만 왜곡 이란 단어를 썼다. 좀 더 도발적이니까 출판사에서 그렇게 했겠지.^^)를 은혜롭게 만든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성서 필사자들이나 지금 성경을 읽고 있는 나 자신이나 '그 나물에 그 밥'이란 말이다. 거창하게 말하면 둘 다 '해석한다'란 단어를 써서 '해석학이니 뭐니'하는 단어가 필요할 것이다.

책 읽으며 잡은 실수들...

269쪽: 2째 줄 "원독법이었다" : '이' 자 인쇄 불량 -> 내 책만 그런건지? ^^ 글씨 위에 작대기가 그어져 있음.
365쪽: 7째 줄 "기독교인들이 예배 의식이" -> "기독교인들의 예배 의식이"
411쪽: 각주 11번에 나오는 "164-65쪽을 보라." -> 아마도 원서 페이지와 번역서 페이지 차이에서 나온 실수인 듯.

뱀발: 책 표지에 나오는 "<다빈치 코드>가 왜곡한 성경의 진실은 무엇인가?", 이 카피는 왜 거기에 나와있는지 잘 모르겠다. 책제목에 "왜곡"을 집어 넣고, "다빈치 코드"란 말을 써서 튀어 보이게 하려고 애쓴 흔적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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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tmirsein
2009/03/10 - [책!책!책!] - 성경 왜곡의 역사
민경식, [신약성서, 우리에게 오기까지. 신약 사본과 인쇄본 이야기], 대한기독교서회 2008. ISBN 978-89-511-1037-5


성경에 일점일획이라도 더하거나 뺐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 중 누구도 죽음을 당하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성경을 베끼면서 고의로 단어를 바꾸거나 집어넣은 사람도 천수를 다했다. 신약성경은 많은 사람들이 손을 댄 작품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이렇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썼다. 그 편지를 [고린도전서]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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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자. 이게 바로 ‘원문(原文)’이다. 바울 당시에는 인쇄술이 발달하지 못했으니까, 아마도 바울의 편지를 받은 사람들은 그 편지를 간직하고 싶거나 다른 이유로 직접 손으로 베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원문에서 ‘사본(寫本)’이 나온 것이다. 이 사본을 어느 사람이 또 베꼈다고 하면, ‘사본의 사본’이 만들어진다. 계속해서 사본의 사본을 또 베끼고 ... . 그러다 보니 사본끼리도 서로 다르게(이문 異文) 되었다. 신약성경에는 이런 사본이 약 2만 5천개가 되며, 지금도 계속해서 사본이 발견되고 있다.


이렇다보니 오늘 신약성경을 읽는 우리에게는 세 가지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하나는 아쉽게도 바울이 처음 쓴 고린도전서가 지금 우리 손에 없다는 이다. 언제 어디서인지도 모르게 바울이 친필로 서명을 남긴 고린도전서가 사라졌다. 다른 문제는 바울의 편지를 베끼던 사람(필사자)이 옮겨 쓰면서 실수를 하거나, 고의로 단어나 구절을 빼버리거나 다른 단어로 바꿔 써서 처음 바울의 편지가 어떠했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글을 그대로 베끼다 보면 좀 전에 썼던 행을 다시 쓰듯이, 또는 ‘내가’를 ‘네가’ 라고 잘못 쓰는 그런 실수를 옛날 사람들도 그대로 범했다. 게다가 필사자가 작업을 하면서 자기 신앙이나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입장과 차이가 나는 부분이 나오면 슬쩍 빼버리거나 바꾸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사본끼리도 서로 다르다보니 어떤 사본을 선택할 것인지 또 그 기준은 무엇으로 할지의 문제이다.


민경식 교수가 쓴 [신약성서, 우리에게 오기까지](대한기독교서회 2008)는 우리에게 남겨진 이 세 가지 문제를 시원하게 풀어준다. 민 교수는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신약성경을 어떻게 베껴 썼으며, 우리에게 남겨진 수많은 사본을 갖고서 최대한 원문에 가깝게 다가가려는 모습(사본학과 본문비평)을 매우 쉽고도 재미나게 우리에게 소개한다. ‘사본학’이라든지 ‘본문비평’이라고 하면 성경 신학자들의 전유물로만 생각하기 십상인데, 그는 평범한 사람도 신약성경의 사본과 인쇄본에 대한 연구를 구수한 옛 이야기처럼 듣게 해준다. 우리 집안의 내력을 알려면 족보를 펼쳐보면 되듯이,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신약성경의 내력을 알고 싶으면 이 책을 펼쳐 읽으면 술술 풀린다.


이 외에도 [신약성서, 우리에게 오기까지]를 읽으면 덤으로 얻을 수 있는 것도 있다. 그것은 바로 ‘성경은 살아있구나’ 하는 깨달음이다.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서, 바울이 쓴 편지를 대본 삼아 어느 필사자는 열심히 베끼면서 바울과 대화했을 것이다. 그런데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필사자가 원문과 똑같이 베끼지 못한 사본을 남기고 말았다. 그런데 그 필사자가 남긴 사본을 또 다른 필사자가 베끼면서 고린도전서와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어떤 때는 자기 신앙과 맞지 않아 고민하고, 어떤 구절에서는 성령이 베푸는 감동으로 몸을 떨기도 하며 살짝 눈물이 나기도 했을 것이다. 성경 사본에는 필사자의 고민과 신앙고백이 들어있다. 이렇게 처음 바울이 쓴 [고린도전서]는 고린도 교회 교우들뿐만 아니라 이후 필사자들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이야기를 나누는 파트너로 살아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우리가 처한 삶의 환경에서 성경을 읽으면 된다. 훈련받은 필사자들은 우리보다 좀 더 전문적으로 성경을 읽었을 뿐이고, 우리는 우리대로 오늘 내게 주시는 은총의 말씀, 교훈으로서 성경과 이야기를 나누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성경 자체를 우상화 하지 말자’고 한다. 오히려 성경은 ‘우리가 읽고, 고민하고, 묵상하면서 매만져야 할 대상’이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살아있음의 내용일 것이다.


이 책과 함께 민 교수가 번역한 「성경 왜곡의 역사. 누가, 왜 성경을 왜곡했는가」를 함께 읽으면, 학자들의 논의 주제를 보통 사람인 우리에게도 쉽게 설명해 주는 사람으로서 미국에는 바트 어만(Bart D. Ehrman)이 우리나라에는 민경식 교수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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