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교회의 공적 책임이 절실하다는 것은 타당하다. 

교회가 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칼빈에게서 교회의 공적 책임의 근거를 찾아 보는 시도를 했다. 

그 개념이 바로 공공선(common good)이다.

칼빈이 공공선을 주장하는 신학적 근거는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데, 

그 첫째가 하나님의 형상 개념이다. 

나머지 두 가지는 기억이 분명하지 않다(발표 자료집을 안 봐서...). 

아마도 성화 개념과 율법 개념이지 싶다.

발표자는 칼빈의 하나님 형상 개념을 설명하면서, 인간 타락이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하나님 형상이 다 파괴된 것은 아니라고 했다. 마치 나무를 베고 나면 뿌리가 남듯이 그렇게 남아 있다고 했다.

이것은 한 마디로 사람에게는 뭔가 서로 공유하고, 연결될 수 있는 뭔가가 남아 있다는 거다.

파괴되지 않고 사람에게 여전히 남아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공적인 선을 얘기할 수 있는 근거라는 건데...

발표자는 이것이 칼빈이 아리스토텔레스나 아퀴나스와는 다른 점이라고 하는데, 나는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물론 칼빈이 그렇게 생각했다면야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만은... 


어쨌든 하나님 형상 개념으로써 공공선을 존재론적 차원에서 뒷받침하는 것이 올바른가? 

이것은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축소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사역으로부터 실천적 차원에서 공공선을 얘기하는 게 더 바람직하지 않나 싶다.

자꾸만 사람에게서 뭔가 공통의 선한 그 어떤 것을 찾는 시도는 그만두자. 

성경에 어디 사람에게 선한 구석이 있다고 했나?

심지어 예수님 조차도 '선한 이는 오직 한 분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신 일이 선한 것이고, 

그 행하신 선한 일을 근거로 이에 대한 사람의 응답의 윤리 내지 응답의 실천으로 공공선을 얘기하는 게 옳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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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tmirsein
조직신학2012/05/05 21:10

미하엘 벨커는 바울의 인간학의 어떤 점을 천재적이라고 평가하고 있을까? 
이것이 내가 이 논문을 읽으며 촛점을 둔 물음이다. 내가 이렇게 실마리를 잡은 것은 아마도 벨커 교수는 자신이 발견한 바울의 천재성이라 일컬을 수 있는 어떤 개념이나 주제가 바울 시대를 넘어 오늘날 인간론의 학제간 연구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주제임을 밝혔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벨커가 찾아낸 바울 인간론의 천재성은 무엇일까? 

우선 벨커는 바울이 영육 이원론을 주장하고 있다고 하는 연구를 비평한다. 물론 성서에 나오는 바울의 표현이 일면 영육 이원론을 주장하는듯 보이나, 결코 육체나 영 어느 한 쪽에도 기울지 않는다. 


오히려 바울은 <몸>(soma)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몸은 육체(sarx)와 전혀 다른 역동성을 지니며, 다양한 영혼적-정신적 능력들의 제어를 받는다. 바울이 몸을 설명하면서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은 “몸 안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이다(계시의 담지자, 성만찬 등등). 영의 권세가 몸의 지체들의 활동을 일으키며, 믿는 자들을 그리스도의 몸과 연합시킨다. 


그렇다고 몸 개념을 육신과 혼(psyche)의 결합체로 이해하는 것은 조심하자고 벨커는 말한다. 만약 성령의 역사와 혼을 구분하지 않으면 인간 생명에 있어서 영적 및 신학적 차원의 혼동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바울이 혼을 인간의 몸과 정신의 단일체라고 암호처럼 표현은 하고 있지만, 그것이 구원론적 규모를 가지는 것은 아님을 벨커는 단호히 주장한다.   


벨커가 보기에, 바울은 혼 보다는 <마음>(kardia)과 <양심>(syneidesis)을 주목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 속에 믿음을 일깨우며,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 속에 빛을 비추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양심은 영의 능력이 현시되는 장소이자 자기판단의 역동적이면서 불안정하고 민감한 공개토론장이다. 바로 이 마음과 양심의 개념 내지 주제에서 신학이 심리학, 철학, 그리고 사회인류학과 대화할 수 있다고 벨커는 본다. 


내가 보기에, 

바울이 육이나 영 어느 한쪽에 기울지 않았다는 점에서 당시의 철학적 사조를 피했으며, <몸>이라는 새로운 개념 -특히 그리스도의 몸을 설명하며- 을 제시하는 점에서 그의 기발함이 나타났고, 몸을 단순히 육신과 영혼의 결합체로 보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의 천재성이 드러났다. 몸을 가진 인간은 마음과 양심을 지닌다. 여기에 성령이 개입/역사한다. 이것이 벨커가 보는 몸의 구원론적 규모인 듯하다. 


그러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은 하나님 영과의 접촉점인가? 사람의 마음과 양심에 하나님 영만 역사하시는가? 거기에 악령도 역사하지 않는가? 마음과 양심은 가치중립적일 수 있는가? 


* 벨커 교수의 논문 파일은 저작권 때문에 첨부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번에 벨커 교수를 초청한 NCC 선교훈련원에서 어서 자료집을 내놓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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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tmirsein
조직신학2012/04/27 10:17

    





미하엘 벨커가 2012년 봄에 우리나라에 와서 발표한 논문 중에 <영-그리스도론: 그리스도의 삼중직에서 하나님 나라의 삼중 양태로>를 읽었다. 대략 생각나는대로 적어보자면...


예수 그리스도의 세 가지 직분이 종말론적 전망에서 하나님 나라의 세 가지 양태로 수미일관하게 펼쳐진다는 게 이 논문의 요지다. 예수님의 공생애 첫 일성이 하나님 나라 선포인데, 이후 그의 사역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내용이 전개되고, 종말에도 결과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서 나타난 내용이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 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 가지 직분은 왕적 직분, 제사장적 직분, 예언자적 직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을 시간상으로 구분하면 십자가를 중심으로 부활 이전과 부활 이후로 나눌 수 있는데, 이 세 가지 시간을 들여다 보면 예수님의 세 가지 사역이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또한 벨커는 이 세 가지 사역이 구약의 내용까지도 포괄하고 있다고 한다. 


벨커는 예수 그리스도의 세 가지 사역을 해석하는데, 그 해석이 명료하다. 이것은 그의 성서해석 관점이며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그리스도의 왕적 직분은 주권 행사나 통치를 가리키는데, 예수는 그의 자유로운 주권을 인간을 위해 자기를 제어하고 제한하는 데(Selbstzuruecknahme) 사용하여 섬기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의 제사장적 직분에서 벨커는 히브리서의 내용과 바르트의 견해를 따라 <심판주가 심판 당하셨기에> 그가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다는 점을 주목한다. 

셋째, 그리스도의 예언자적 직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여 당신의 사역을 하실 때, 자의로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셨다는 점에서 구약의 (참된) 예언자의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논지를 전개한 것을 마무리하며 벨커는 그리스도의 사역은 어느 한 직분을 강조한다고 하여 제대로 해석될 수 없고, 세 사역의 상호 내재적인 측면에서 해석되어야 한다고 선을 긋는다. 


논문을 읽고 어렴풋이 드는 생각은...

벨커가 자신의 논문을 전개하면서 다니엘 미글리오리의 삼직분론에 대한 정리 및 제안을 수용하고 바르트의 해석을 기반으로 삼고 있는 것 같다(바르트는 정말 대단한 바위다). 논문 마지막 부분, 세 직분/사역의 상호 침투/내재를 얘기하는 대목에서 벨커가 그리스도 사역의 삼위일체적 양태를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 삼각형의 각 뿔이 성부, 성자, 성령이라면, 드러나는 게 성부일 때 나머지 뿔들은 숨어 있는 그런 모습을 얘기하고 있는지, 아니면 또 다른 모습인지는 정확히 그림이 안 그려진다.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라는 개념이 참 애매하다. 


벨커가 왜 영-그리스도론이라고 한 것인지 의문이다. 논문의 부제목은 이해하겠는데, 영-그리스도론이라는 주제목을 왜 달았는지 모르겠다. 물론 벨커는 논문 서두에서 성령을 그리스도의 현존을 경험케 하는 영으로 말하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의 삼중직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

그리스도의 세 가지 직분에서 하나님 나라의 세 가지 양태로 연결하여 본 벨커의 관점은 멋지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하나님 나라/천국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자기를 제한하고 섬기시며, 우리와 대화하시기 위해 부단히 자기를 포기하시고, 당신의 생명을 선사하는 영의 말씀으로 우리를 먹이실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겸손(?)이 해와 같이 빛나는 그곳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 것이다. 아멘.


교회/성도가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한다면, 그리스도께서 걸으신 섬기는 왕으로서의 길, 자기 자신의 목숨을 제단 숯불 위에 불태워 바치는 제사장의 길,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참된 예언자의 길을 뒤따라 걸어야 할 것이다. 


* 벨커 논문을 읽어 볼 수 있는 곳: http://instit.ac/html/reform/reform01.php?mode=read&read_no=11&now_page=1&men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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